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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민주화 운동

 

 

 


서로 나누며

살수 있는 권리


 

 


 

 



민주화

이후 30



 

 

 

 

 

 

 


 

얼마 전 우리는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했습니다. 삼십 년이란 세월이 언제 지나갔나 싶을 정도인데 말입니다.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는 무척 많은 풍상을 겪었습니다. 기복이 있었고 후퇴도 있었고 위기의 순간도 적지 않았지만 어쨋든 30년 전과 비교해 괄목상대할 발전을 했습니다. 변화의 폭과 깊이를 따라 잡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특히 인권민주주의에 대한 우리 사회의 수준과 시각은 크게달라졌습니다.


1987년 문지항쟁의 기폭제 역활을 한 박종철 학생 고문치사 사건을 돌이켜 봅니다. 가톨릭 사제들과 민주인사들, 양심적 교도관들의 활약으로 사건의 전모가 발혀졌지요. 당시 시민들이 거리에 들고 나온 손으로 쓴 플래카드에는 '고문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라는 구호가 적혀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가 철저히 억눌렸습니다. 무차별로 최루탄을 쏘고 가택연금, 예비검속, 가두검문, 구타와 고문 등이 일상사처럼 일어났습니다. 그 시절에는 그런 것이 인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권력이 시민의 기본적 자유를 박탈하지 못하도록 방어하는 것이 인권의 핵심 이었습니다 .민주화 이후 30년 세월 동안 이런 점에서는 분명 발전이 있었습니다. 백주에 폭력이 난무하는 그런식의 인권침해 시대는 이제 사라졌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지금도 시민의 기본권이 무시되는 일이 간혹 일어나곤 합니다. 백남기(임마누엘)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세상을 떠난 사건을 생각해 보십시오.

시간을 30년 전으로 되돌린 듯한 시대 착오적인 폭거였던 것입니다.



 






세계인권선언

인류의 마그나카르타


그런데 이제 우리는 인권의 범위를 넓혀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권이 어느정도의 범위를 가진 개념인가를 알아보려면 세계인권선언을 읽어보는 편이 가장빠릅니다. 30조항으로 이루어진 아주 단춘할 문헌입니다. 출력하면 2-3페이지밖에 되지 않습니다. 학생들에게 읽혀보면 10분이면 다 읽었다고 손을 듭니다. 그런데 이토록 간략하고 평이한 세계인권선언이지만 인권의 바이블로 인정되고 있습니다.지금까지 인권에 관해 수많은 문서, 도서,  논문이 나왔지만 딱 하나만 고른다면 당연히 세계인권 선언을 골라야 할 것입니다.

달력이나 수첩을 보면 12월 10일이 '인권의날' 로 되어있습니다. 교회에서도 대림 제2주일을 인권주일로, 그 한 주간을 사회교리주간으로 지냅니다. 왜 이때 인권을 기념할까요? 세계 인권선언은 유엔에서 만들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엔이 설립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 중의 하나가 세계인권선언문을 작성한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미국 가톨릭교회가 먼저 <가톨릭인권선언>을 선포하여 유엔에 전달했고, 당시 유네스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던 가톨릭 신학자 자크마리탱도 세계인권선언 작성에 힘을 보탰습니다.

세계인권선언의 문구를 확정하는 일이 여간 어렵지 않았습니다. 철학적, 신학적, 사상적, 정치적 견해 차이 때문에 아주 길고도 격렬한 논쟁을 거쳤습니다. 저는 몇 년 전 세계인권선언에 관한 책 「인권을 찾아서」를 집필하면서 선언의 작성에 얽힌 비화들을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어렵고 골치 아픈 과정을 거쳐서 선언문이 나온 것 자체가 작은 기적이었다고 느겼을정도 입니다.

 유엔인권위원장이던 엘리너 루스벨트 여사는 이렇게 해서 세상에 나온 세계인권선언을 "인류의 마그나카르타"라고 불렀습니다.

아주 적절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인류역사에서 그 이전


 




복지는


인간이 존엄하게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본질적 요구를


사회공동체로부터


제공받을 수 있는 권리라고 보아야 합니다.


의 모든 인권역사가 세계인권선언에 포함되있고, 그 이후의 모든 인권발전이 세계인권선원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

18년이 되면 세계인권선언을 선포한 지 70년이 됩니다. 국제적으로나 한국에서나 인권선언을 기념하는 움직임이 활발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세계인권선언의 전반부에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흔히 아는 권리들이 나옵니다. 생명, 자유, 신체안전, 노예금지, 고문철폐, 법앞의 평등, 자의적 체포금지, 공정한 재판, 사생활의 자유, 거주와 이전의 자유, 국적 보유, 자유의사 결혼, 사상 · 양심 · 종교의 자유, 의사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선거를 ㅌ옹한 참정권 등이 등장합니다.

 흔히 우리가  인권을 떠올릴 때 자주 연상하는 곤전적 인권인데요. 이것을 학문적으로는 시민적 · 정치적 권리(줄여서 '자유권')고 하지요.

 선언의 후반으로 가면 의외의 항목들이 나옵니다. 22조에서27조 사이에 규정되어 있는 권리들입니다. 사회보장, 노동의 권리, 휴식과 야가, 의식주, 의료, 사회서비스, 실업자 · 장애인 · 모성보호, 교육받을 권리, 문화 · 예술 · 학문을 누릴 권리 등이 그것입니다. 이것을 학문적으로 경제적 · 사회적 · 문화적 권리(줄여서'사회권'또는 '복지권')라고 부릅니다. 저는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앞으로 우리가 특히 강조해야 할 인권이 바로 이부분이 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권,

인간으로서의 복지


문제는 사회권이 인권인지를 모르는 분이 아직도 많다는 사실 입니다. 자유권이 인권이라는 사실은 이제 어느 정도 상식이 된 반면, 사회권에 대한 대중의 인지도는 너무나 낮은 것처럼 보입니다. 세계인권선언을 처음 읽어본 일반시민들 중에는 도대체 사회권언제부터 인권에 포함되어 있었는가 하고 의아해하는 분도 계십니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저는 "처음부터요!"라고 답하곤 합니다. 그러면 좌중에 일순 침묵이 흐르곤 합니다. 우리가 늘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말을 쓰곤 합니다, 저는 세계인권선언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한국인은 인권의식에 관한 한 세계인의 글로벌 스탠더드보다 70년이 늦은 것입니다. 

 그래도 약간의 좋은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 사이에 복지확충에 관한 문제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의제로 등장 했습니다. 일단 '경제의 피자'를 키워야 한다는 둥, 복지가 사람을 게으르게 만든다는 둥 하면서 어떻게든 복지를 키우지않으려는 분위기가 많지 않았습니까? 세계 11위권의 경제대국으로서 복지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은 결과, 오늘날 금수저니 흙수저니 헬조선이니 하는 사회가 된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복지는 단순한 퍼주기가 아니며, 복지가 없으면 경제발전도, 삶의 질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꼭 강조하고 싶은 바가 이ㅣㅆ습니다. 세계인권선언에서 규정한 사회권은 인권으로서의 복지를 뜻한다는 점입니다.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복지란 구가가 해주면 좋은 어떤것, 다시말해 국가가 시민들에게 베풀어 주는 시혜로 보면 곤란하다는 뜻입니다. 복지는 인간이 존엄하게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본질적 욕구를 사회공동체로부터 제공받을 수 있는 권리라고 보아야 합니다. 똑같이 받더라도 시혜로서 받는 것과 권리로서 받는 것과 권리로서 받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 입니다.

 북구의 복지국가 들을 방문해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편안하고 유순하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아득바득 살지 않아도 사람들이 최소한 삶의 격을 지킬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 아닐까요? 인간과 인간 사이에 서로 연대하고 서로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제도적으로 정착시킨 사회가  만들어 낸 인간 유형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계인권선언의 사회권 항목을 만들 때에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에 사는 모든 사람도 사회권적 인권 보장을 통해 편안하고 유순한 '관상'을 가질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