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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의 한서점의 이야기를 담아봤다

category 볼거리/야곱의 우물 2017. 9. 16. 09:08

 


 

 

속초 동아 서점 김일수 김영건

 


 



백 년 항해를 꿈꾸다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운 그날 아침



2014년 8월 어느 날, 김영건(안드레아) 씨는 이른 아침에 전화를 받았다. 저편에서 아버지(김일수 이사악)의 목소리가 꿈처럼 아물거렸다. 서점을 해볼 생각이있느냐고. 잠결에 그는 알았다고 대답했는데. 정신이 들자 한순간 찬물을 끼얹은 것 같은 느낌이 온몸을 휘감았다. 갑작스러웠고 당황스러웠다. 서점…. 할아버지 때부터 해온 그 서점이다.


그날 아침을, 영건 씨의 아버지 김일수 씨는 이렇게 기억한다. "전화를 걸었어요. 나는 나이 먹어서 자신도 없고 누가 전적으로 하지않으면 이제 그만두겠다고 했어요.

아들(영건)이 하겠다고 했을 때 정말 좋았죠.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좋았어요."

 그해 12월 영건 씨는 9년간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아버지 곁으로 돌아왔다. 자신이 서점을 운영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저 서점은 할아버지의 일이있고 아버지의 일일 뿐이었는데 이젠 운명처럼 그의 일이 되었다. 그건 김일수 씨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아버지의 일을 넘겨받을 때도 어떤 계획이 있어서 한것은 아니었다. "저희 아버지( 김종록 아브라함)가 1956년에 동아문구사를 차렸어요. 조금씩 책도 취급하닥 1060년대 후반에 서점으로 바꿨죠.

1977년 부터 실질적으로 제가 운영하다가 1990년대 초부터 대표를 맡았어요. 저도 이 일을 한다는 건 생각도 해보지 않았어요. 제가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어요. 그시기에 아버지가 건강이 좋지 않아서 서울에 오셔서 치료를 받으셔야 했고, 당장 누군가는 집안을 돌봐야 했어요, 서점도 봐야하고 그래야 가족이 생활을 하죠. 제가 아버지 치료받으시는 동안만 가있겠다고 하고 왔는대. 어쩌다 보니 눌러앉았고 미적미적 대다보니 그게 몇십년이 흘렀어요."



 


 

일 년이 지나

비로소 깨닫는것






김일수 씨가 서점을 운영하던 1981년부터 1997년까지는 호황을 누렸다. 학구열이 높아 부모들이 고생하면서도 내 자식은 가르치자던 시기다. 참고서가 효자노릇을 했다. 이름 있는 소설가의 책이 시리즈로 출간되면 10만 부씩 판매 되기도 했다. 서점 운영이 그때만큼 재미있던 때는 없었다. 2000년대에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상황은 돌변했다. 2010년쯤부터는 현상유지도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김일수 씨는 고민에 빠졌다. 아버지께 말씀 드렸다. 젊은 시절 다바쳐 이 일을 했지만 이젠 재미도 없고 그냥 붙들고 있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고민을 충분히 이해했고 그만둬도 좋다고 허락했다.

  "아버지의 허락을 받았지만 아내와 이야기하면서 조금 더 해보자 했어요. 아버지 살아계시는 동안엔 적자를 보더라도 운영을 하자 했어요. 그만 두라고는 하셨지만 많이 허전하고 서운하실거라 짐작했어요. 저도 똑같은 상황이었으면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마음을 먹었는데도 정말 아니더라고요. 아무런 낙도 없고 비전도 없고. 그 시절은 쉽지 않았어요. 정말 어려워서 하루에도 몇 번씩 문닫고 싶은 생각박에없었어요."

사실 김일수 씨는 서점 리뉴얼을 고민할때 지금까지 자신이 운영했던 것과는 뭔가 다른 방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동안의 경험만 있을 뿐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답답하기만 했다. 2014년 겨울 아들 영건 씨의 귀향은 사그라지던 김일수 씨의 가슴을 다시 뜨겁게 달구었다. 리뉴얼 개점일은 2015년1월30일. 일주일 전인 23일에 책 이만권이 도착했다. 그날 이후 새벽2,3시까지 책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데만 6개월. 그사이 아버지와 아들은 새롭게 만났다. 기쁨과 기대도 컸지만 갈등도 없지 안핬다.

"밤이 깊어오면 아버지는 내게 말했다. 오늘은 여기서 그만하자. 무리하지말고 내일다시 시작하자. 그럴때면 나는 아버지께 윽박지르곤 했다. 아직책이 이렇게나 많이 남았는데, 어떻게 들어갈 수 있어요.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니에요? 나는 다름 아닌 내 안의 막막함과 두려움에 어쩔 줄 몰라 화가났을 따름이었다는 걸, 일 년이 지난 지금 깨달았다.

그때 아버지를 조금더 편히 쉬게 해드리지 못한 나의 조급함에 후회가 든다."

(김영건,「당신에게 말을 건다-속초 동아서점 이야기」55쪽)


 






네가

곁에 있다는 것





서점지기 3년차, 영건 씨는 처음부터 자신의 기대가 무너졌다고 고백했다. 한가한 오후엔 책도 좀 볼 수 있으려니 하는 남만 적인 생각은 벌써 접었다고. 신간은 한 권 한권 자신이 직접 찾아 주문하는데 그 기대는 충족되기도 하고 여지없이 무너지기도 했다. 책을 좋아하는 그지만 때론 책이 밉기도 하다. 책과의 애증관계가 시작된 것이다. 서점일을 하려면 열정이 아니라 지치지 않는 꾸준한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만큼 현실은 그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경제적인 부분만 아니라 제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서점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에 책에 대해 남다르게 느끼죠. 어떤책은 제가 좋아하는데 잘 팔리지 않고 어떤책은 잘 팔릴거라 예측했는데 그렇지 않기도 하고,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거나 잘 안 팔릴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고 이런 모든 기대가 어긋나기도 하고 충족되기도 하면서 애증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죠. 그래도 책은 아름다운 매체라고 생각해요." 

   특히 영건씨가 꿈꾸는 서점은 책에 대한 경험이 극대화된 공간이었다. 같은 책도 어떻게 분류하고 어떻게 진열하고 어떤 모양새로 놔두는지에 따라서 책의 가치와 발견성이 확연히 달라진다는 영건씨.

전혀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분류했을때 , 더욱이 그 분류 방법이 상당히 정확하고 설득렬을 가질때, 굳이 발품을 팔아 서점까지 찾아오는 독자들의 책 체험은 확장되고

재미까지 더해진다.

  "사회적 이슈를 담은 책이나 특정 책들을 조금 색다른 카테고리로 전시해요. 예를 들면 자연으로 부터 배우는삶, 쓰잘데없이 고귀한 기술들의 목록, 젊은 과학도를 위한서가, 아카니즘에 대한 책등으로 분류를 한다든가. 독립출판물도 있고. 올리버 색스나 존 버거등 작가의 부고 소식이 있을 때 회고전을 열기도 했어요."

  하루하루 서점 사람이 되어가는 아들을 바라보며 아버지 김일수 씨는 말한다. 기력이 다할때까지 지켜주고 싶다고. 그것이 삶의 기쁨이고 힘이 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그리고 이미 세상을 떠난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또 미래를 엮어갈 손자들을 바라보며 그는 백년서점을 꿈꾼다.

  8월의 쏟아지는 햇살아래 넘실거리는 동해가 책방 안으로 성큼 밀려들 것만 같은 오후. 바다도 태양 빛이 뜨거워 잠시 쉬어가고, 푸른 파도는 하얀 거품 일으키며 책과 책 사이에서 철썩 거린다. 지난 60여년, 3대에 걸쳐 운명처럼 이어지는 책과의 인연, 때론 순풍에 기대어 나아가고 때론 역풍이 불어와 고난을 겪어도 속초 동아서점의 향해는 계속된다.